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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04 08:02

(9월)이 달의 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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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이달의 훈화
연중 제21주간-제25주간
정홍 사도요한 신부.
정홍 사도요한 신부는 2010년 8월 춘천교구에서 사제서품을 받고 2010년 9월부터 2014년 1월까지 퇴계성당, 솔올성당, 교동성당 보좌신부를 지냈고, 2014년 2월부터  2017년 2월까지 3년간 일동성당 주임신부로 사목하였습니다. 현재는 국내 연학 발령을 받고 현재 북한학을 수학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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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1주간(8월27일-9월2일)
구원의 열쇠를 낳고 열쇠공이 되신 성모님

한가롭게 하늘나라 마당을 거니시던 예수님께서 하늘나라에 들어온 어떤 사람들을 보시고 고개를 갸우뚱하셨다고 합니다. 죄를 많이 지었던 저 사람은 여기 들어올 사람이 아닌데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늘나라의 열쇠를 맡기신 베드로를 불러서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고 꾸중하셨습니다. 그랬더니 베드로가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어머니께서 쪽문으로 사람들을 들어오게 하시는 것을 제가 어떻게 합니까?….”
죄인들의 피난처이신 성모님의 자비로운 마음이 천국 문을 여는 열쇠가 되어 주었음을 설명해주는 재미있는 이야기입니다.
잠겨 있는 문을 열려면 열쇠가 필요합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종살이를 하던 이집트를 탈출할 때, 잠겨 있던 홍해 바다의 문을 열쇠는 모세의 지팡이와 기도를 통해서 다가온 하느님의 힘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인간의 힘으로 결코 열 수 없는, 죽음이라는 무덤 문을 열어버린 열쇠는 예수님의 부활이었습니다.
연중 제21주일을 지내는 교회는 “스승님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라는 베드로의 고백을 통해 죄와 죽음으로 닫힌 생명의 문을 열 수 있는 유일한 열쇠가 바로 예수님임을 선포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의 문을 여실 때 열쇠가 되어 주신 성모님, 구원의 열쇠를 낳으신 열쇠공이 되어주신 성모님, 베드로에게 맡겨진 하늘나라의 열쇠를 당신의 자비로운 마음으로 닦고 계신 사도들의 모후 성모님….
그런 성모님을 사령관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우리도 이웃과 가족의 닫힌 마음을 열어 주는 열쇠가 되어야 할 겁니다. 성모님의 전구를 청하며 누군가에게 닫혀 있는 나의 마음을 열고, 누군가의 닫힌 마음을 열어주는 열쇠가 되어 살아가기를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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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2주간(9월3-9일)
모든 것을 하느님 뜻 아래로 내려놓아야

제가 본당 신부 시절, 언젠가 평일미사 강론 시간에 교우들께 어제 복음 말씀이 무엇이었는지 여쭤본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많은 분들이 대답을 하실 것이라는 큰 기대에 차서 물어봤는데 대부분 대답을 못하셔서 실망을 했습니다.
그런데 반대로 언젠가 주일미사 강론 시간에 지난 주일 복음 말씀이 무엇인지 물어보았습니다. 일주일 전 말씀이라 큰 기대를 안 했는데, 의외로 대답을 잘하셔서 굉장히 기뻤습니다. 그때 기대가 너무 크면 실망도 클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마음을 비우면 기쁨은 더 크게 다가온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지난 주일, 예수님께 “나는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라는 말씀을 들은 베드로는 자신이 미처 기대하지 못했던 예수님의 말씀에 매우 행복했을 겁니다. 그러나 이번 주일, 베드로는 주님의 수난 예고 말씀을 들었을 때, 크게 실망하며 예수님을 꼭 붙들고 반박을 합니다. “맙소사, 주님! 그런 일은 주님께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인간 구원이라는 하느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주님의 수난은 베드로의 기대와 거리가 멀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 대한 베드로의 큰 실망은 그가 가졌던 기대가 얼마나 잘못되었는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성모님께서는 주님의 어머니셨음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수난 예고가 이루어지는 그 순간까지 당신과 아들 예수님의 편안함에 대한 기대를 하느님의 뜻 아래로 내려놓으셨습니다. 그래서 성모님께서는 하늘의 모후가 되시는 큰 기쁨을 얻으셨지요.
교구 인사 명령에 따라 너무나 하고 싶지 않은 공부를 해야 하는 저도 성모님의 전구를 청하며 안락함에 대한 기대를 과감히 버리고자 합니다. 그리고 희망합니다. 우리 모두 성모님의 모범을 본받아 하느님의 사랑이 나를 통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기대, 그 올바른 기대 하나만 생각하며 살아가기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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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3주간(9월10-16일)
성모님은 교회의 어머니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등을 맞대고 있는 모습으로 탄생한 ‘사람 인(人)’자를 볼 때면, 먼 옛날부터 동양의 문화도 이끄셨던 하느님의 숨결을 느끼게 됩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요한 1,14)”는 말씀처럼, 한 처음부터 가정을 이루도록 사람을 창조하신 하느님께서는 가정을 통해 우리에게 오셨고, 성자 예수님께서는 성모님과 성 요셉과 등을 맞대고 이야기하시며 서로의 사랑을 느끼셨을 겁니다.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가정을 통해 메시아를 보내주실 준비를 하셨고 나자렛 성가정을 통해서 메시아를 보내주셨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믿음의 가정인 교회를 통해 우리를 구원하고 계십니다. 구원은 사람이 함께 살고 있는 곳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믿음의 가족들이 얻는 영적인 선에 관심을 가지며 살아가야 합니다. “네 형제가 너에게 죄를 짓거든, 가서 단둘이 만나 그를 타일러라. 그가 네 말을 들으면 네가 그 형제를 얻은 것이다.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라는 이번 주일의 복음 말씀은 믿음의 가정인 교회를 위한 노력과 기도를 멈추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알려줍니다.
참 버겁게 들리는 말씀이지만 우리는 다행스럽게도 홀로 버거운 짐을 지지 않습니다. 교회라는 이 믿음의 가정에 어머니가 계시지 않는 것을 바라지 않으신 주님께서 성모님을 교회의 어머니가 되게 하시어 우리의 노력과 기도에 힘을 실어주셨기 때문입니다. 성모님은 교회라는 믿음의 가정을 이루는 마지막 퍼즐 한 조각이 되신 것입니다.
묵주기도 안에서 성모님께 전구를 청하며 마음이 아픈 가족들의 치유와 회개를 위해 함께 노력해 나가기를 희망합니다. 성모님께서는 초대교회 때 함께 하셨던 그 모습 그대로 우리 곁에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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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4주간(9월17-23일)
영신적 순교자이신 성모님

1866년 병인년 3월30일, 충청도 갈매못에서는 29세의 젊은 외국인 신부가 순교의 칼날을 받았습니다. 그는 한국성으로 오(吳)를 사용했던 베드로 오매트르 신부님입니다. 25세의 젊은 나이에 사제가 되어 약 3년 동안 이 빈들에 하느님의 영광을 채웠던 성 오 베드로 신부님, 그분은 순교하시기 전까지 항상 품에 성모상을 모시고 다니면서 성모님의 전구를 청하셨다고 합니다.
모든 생명은 하느님에게서 나오고 그분의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아셨던 성 오 베드로 오매트르 신부님, 그분께서는 성전에서 생명 예수님을 하느님께 봉헌하신 성모님을 너무나 사랑하셨기에 체포되기까지 성모님을 품에 안고 계셨습니다. 박해 속에서 언제나 순교를 염두에 두셨기에 영신적 순교자가 되신 성모님을 더더욱 사랑하셨나 봅니다.
성모님께서는 성전에서 시메온의 예언을 들으셨습니다. “보십시오, 이 아기는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졌습니다. 그리하여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 많은 마음 속 생각이 드러날 것입니다.”
시메온의 예언대로 생명이신 아드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생명을 내어놓으실 때, 성모님의 영혼은 함께 못 박혔습니다. 성모님의 가슴은 그렇게 칼에 꿰찔렸고 성모님은 인류 유일의 영신적 순교자가 되셨습니다. 우리는 그런 성모님을 순교자들의 모후라고 부릅니다.
우리 교회는 비단 103위 순교 성인뿐만 아니라, 정확한 순교자의 수를 추정하기 힘들만큼 엄청나게 많은 순교자가 나온 교회입니다. 그래서 순교자들의 어머니이신 성모님의 사랑을 더 많이 받을 겁니다. 순교자 성월을 보내고 있는 지금, 순교할 때까지 항상 성모님을 모시고 성모님의 전구를 청했던 오 베드로 신부님의 성모신심을 기억하며 영신적 순교자이신 성모님을 더 많이 사랑하시기를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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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5주간(9월24-30일)
묵주기도와 순명․봉사로 성모님 곁에 있어야

지난 7월 이스라엘 성지순례 때에 성모님께서 엘리사벳을 만나셨던 에인카렘을 순례했습니다. 세례자 요한 탄생 성당에 들어가서 기도를 하는데 그동안 보지 못했던 성화가 제 눈을 사로잡고 저를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엘리사벳이 세례자 요한을 낳는데, 성모님께서 세례자 요한을 받고 씻기는 모습이 그려진 성화였습니다.
루카복음은 엘리사벳을 찾아 뵌 성모님께서 석 달 가량 엘리사벳의 집에 머물렀다고 전합니다. “마리아는 석 달가량 엘리사벳과 함께 지내다가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루카 1, 56)” 성모님께서는 당연히 출산이 가까워진 엘리사벳에게 봉사하셨을 겁니다. 그런데 이 성화를 보기 전까지는 소녀 성모님이 할머니 엘리사벳을 챙기고 시중드는 모습만을 묵상해봤지, 소녀 성모님께서 갓난아기 요한을 받고 씻기는 것까지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순간 그 성화에 잠기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모님 태안의 예수님께서는 인간이 이 세상에 올 때, 마중을 해주셨던 것이구나. 어머니의 태 안에서 원죄를 용서받아 기뻐 뛰어 놀은 요한, 그는 하느님의 마중까지 받았으니 참으로 복되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선한 포도밭 주인의 비유’에는 사람들을 자신의 포도밭으로 오게 하려고 손수 장터로 나가는 포도밭 주인이 등장합니다. 비유 말씀에 등장하는 포도밭 주인은 인간을 당신의 포도밭으로 부르시기 위해 장터로 손수 마중을 나가시는 하느님의 모습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의 아침에 어머니 태 안에서 요한을 마중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선한 포도밭의 비유’에서 일꾼들이 저녁에 품삯을 받은 것처럼, 우리도 우리의 생이 다하는 저녁에 주님의 나라에서 주님의 마중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성모님 곁에만 있으면 됩니다. 묵주기도를 통해서 그리고 어머니께서 보여주신 순명과 봉사의 삶을 통해서, 그렇게 우리의 어머니 곁에서 주님의 마중을 받기를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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