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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ocutio - February, 2010

비드 맥그리거 신부-꼰칠리움 영적지도신부



기본으로 돌아갑시다(4)


주회합(II)

기본으로 돌아가자는 올해 중점 실천과제와 현재 진행 중인 레지오 쇄신 운동과 관련하여 저는 다시 한 번 쁘레시디움의 주회합을 주제로 말씀드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주회합에 대해 간략하게 말씀드리기 전에 교본이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지 다음과 같이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주회합은 레지오의 심장이며, 이곳으로부터 생명의 피가 모든 동맥과 정맥의 혈관으로 흘러 들어간다. 주회합은 레지오를 밝히는 전력과 동력을 생산하는 발전소이며, 레지오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들을 제공해 주는 보화의 곳간이다. .... 그러므로 레지오 단원들은 주회합에 참석하는 일이 레지오의 으뜸가는 의무이며 가장 신성한 의무라고 생각해야 한다. 이 주회합 참석의 의무는 무엇으로도 대신 채울 수가 없다. 주회합 참석에 소홀한 단원들의 활동은 마치 영혼이 없는 육체와 같다. 이 으뜸가는 의무를 게을리하게 되면 어떠한 활동도 성과를 거두지 못하게 되고 곧 레지오 대열에서 탈락하고 만다는 사실은 이치로 보아도 그렇고 이미 경험상으로도 잘 드러나 있다.”(교본 제11장 5절) 이 설명은 레지오의 존재 의의나 특히 기본으로 돌아가자는 과제를 생각할 때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교본은 쁘레시디움의 주회합에 대해 많은 지면을 할애하여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난방과 조명, 좌석 배치, 활동계획서, 회합 진행 시 각각의 순서에 따르는 책임 소재 및 간부들의 고유 의무 외에도 더 많은 사항에 대해 그 중요성을 완벽하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상훈에서는 주회합과 관련하여 가장 중요한 항목으로 네 가지를 선정하였습니다.

그 네 가지는 회합에 정시 출석, 규칙적인 출석 및 활동에 대해 알맞은 보고, 또렷한 보고를 하라는 것입니다. 도대체 왜 이 네 가지가 회합의 다른 사항보다 더 중요한 항목으로 선정되었을까요? 레지오 기도문, 특히 까떼나가 상훈의 으뜸 항목으로 첫 번째에 위치해서는 안 되었을까요? 어쩌면 영적 독서나, 당치 않지만 훈화가 특별히 강조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프랭크 더프는 정시 출석, 규칙적인 출석, 알맞은 보고, 또렷한 보고가 주회합과 관련하여 가장 기본적인 요소라고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정시 출석은 우선 우리가 회합이나 다른 단원들에게 예의와 존중을 표하는 것입니다. 흔히 말하듯이 예의를 지켜야 하느님의 은총도 받을 수 있습니다. 신앙의 견지에서 볼 때 정시 출석은 주회합을 소집하고 주관하시는 성모님께 예의와 공경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완전히 세속적인 관점에서 보더라도 정시 출석을 소홀히 하는 경우에는 그 회합의 모든 정신이 점차로 훼손되기 마련입니다. 물론 정시 출석의 습관은 수련이나 수양을 통해 형성되며 단원들이 더 신뢰를 받을 수 있고 책임감을 가지게 만들어 줍니다. 성모님께 대한 신심이나 성모님의 군단에 헌신하려면 정시 출석을 위해 자신의 생활을 희생해야 될 경우도 종종 생기기도 하지만, 이렇게 언뜻 보기에는 사소한 조항의 준수를 통해 우리는 성모님의 군단과 그 단원들에게 매우 큰 사랑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주회합에 규칙적으로 출석하는 것은 우리의 애정과 충성을 드러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성모님과 레지오를 사랑한다면, 성모님과 그분의 사도직 계획과 함께하는 이러한 매주의 만남에 빠짐없이 참석하는 충실함과 인내심을 보여야 할 것입니다. 경험상으로 볼 때 정시 출석과 규칙적인 출석이 이루어지지 않는 쁘레시디움은 급격히 약화되므로 모든 단원들이 자기의 도리를 지키지 못하고 은총도 받지 못하게 되어 괴로워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따라서 규칙적이고 끈기 있게 주회합에 참석하는 것은 성모님과 우리의 동료 단원들에게 드리는 특별한 선물입니다.

레지오는 개인 성화의 배움터일 뿐만 아니라 복음화의 학교입니다. 자신이 행한 사도직 활동에 대해 알맞고 또렷한 보고를 함으로써 모든 단원이 개인의 성화나 복음화를 배우며 이를 통해 레지오는 사도들을 만듭니다. 주간 활동보고 방법에 대하여 교본에서 길게 설명하고 있는데 그 중에 짧게 인상적으로 표현한 구절이 있습니다. “활동 보고는 기도와 마찬가지로 회합의 중요한 요소이며, 기도와 보고는 서로를 보완해 주므로 쁘레시디움 회합에서 핵심을 이룬다.”(제18장 9절) 믿기 어렵겠지만 이 말 또한 진실입니다. 왜 그럴까요? 왜냐하면 활동보고는 레지오 단원들을 북돋아주고 또 사도가 되도록 만든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선, 실제로 행한 사도직 활동의 증거가 있습니다. 우리가 단지 사도직 활동에 대해 말로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무 것도 이러한 실제적인 복음화를 대체할 수 없습니다. 활동보고를 하지 않는다면 그 밖의 다른 사항들은 단순히 떠들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실속없이 내뱉는 말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고 나서 우리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활동을 했는지 발표합니다. 이것이 바로 무엇을 말하고 무엇은 말하지 않아야 되는지, 각각 다른 상황이나 필요성에 따라 어떤 방법으로 접근해야 하는지를 서로 가르쳐 주고 배울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이것이 또한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격려하고, 매우 어려운 상황에도 대처할 수 있는 준비를 더 잘 할 수 있게 해주는 방법입니다. 우리는 우애와 상호 보완의 정신으로 서로의 사도직 활동에 대해 비평합니다. 저는 진정한 사도를 양성하는데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보고들은 가능한 한 최선을 다해 발표되어야 합니다. 물론 그러한 보고도 제대로 듣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저는 주간 사도직 활동보고를 주고받는 것에 관한 교본의 내용(제18장 9절)을 전부 읽어볼 것을 강력히 권고합니다.

결론적으로 상훈의 첫 번째 항목으로 강조된 네 가지 요점이 무엇보다도 우리가 왜 성모님의 군사인지를 깨닫게 해주는 ‘성모님께 대한 참된 신심’을 가장 현실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어머니이자 우리들의 어머니이기도 하신 성모님을 사랑하고 그분께 봉사하는 군사, 즉 레지오 단원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남궁민

5월, 교회 달력으로는 성모성월이자 사회에서는 가정의 달에 가정에서의 성모님의 역할을 되새겨봅시다. “전쟁터에 나가기 전에 한 번 기도하고, 바다에 나가기 전에는 두 번 기도하고, 결혼하기 전에는 세 번 기도하라”는 말이 있지요. 혼인 생활이 전쟁터나 바다의 풍랑이상으로 힘든 것임을 이른 말일 것입니다. 결혼한 다음 자녀들이 생기면 더 힘들어집니다. “하늘이 자식을 주신 것은 세상에 자기 마음대로 안 되는 일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라는 이야기가 이해됩니다. 자녀 앞에서는 끝없이 무너지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지 않습니까? 이렇게 속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자식들은 모릅니다. 자녀들에게 아버지는 혼도 진도 다 빠지도록 돈 벌어 들이는 기계이고, 어머니는 자신의 삶은 없어진 채 가족들의 필요에만 언제든지 준비되어 있어야 하는 24시간 고용자 같다고 하소연합니다. 현실이 바뀔 수는 없을까요?

신앙인은 삶의 뿌리를 하느님과의 관계에 두고, 하느님의 자녀로서 하느님처럼 바뀌어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러기에 신앙인의 삶의 목표는 자기 자신을 없애면서 상대 안에서 상대를 위해서 살아가는 삼위일체의 삶입니다. 하느님의 삶을 본받고 싶지만 쉽지 않지요.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그 삶의 모델로 나자렛 성가정을 우리에게 제시하십니다. 거기서 성모님은 어떻게 사셨나요? 무엇보다 먼저 어머니셨습니다. “신은 모든 곳에 있을 수 없어서 어머니라는 존재를 만들었다”라고 하지요. 한 가정에서 어머니의 역할은 신처럼 중요하다는 이야기일겁니다. 성모님은 아들 예수님의 숨소리 하나까지 마음에 새기시며 그 곁을 지키신 어머니로 사셨습니다. 손수 요셉 성인과 예수님을 위해 밥을 짓고 빨래를 하고 청소를 하셨을 것입니다. 가정을 따뜻하게 살피시느라 분주하신 우리 어머니 그대로이십니다.

성모님께서 예수님과 내내 함께 계시며 침묵 가운데 희생과 사랑의 삶을 사심으로써 성가정을 이끄실 수 있었던 근본은 무엇일까요? 그 근원은 성모님이 예수님의 잉태를 알렸을 때 응답하신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라는 말씀에 담겨 있습니다. 너무도 중요하고 큰 힘이기에 삼종기도 때마다 우리도 반복하지요. 한마디로 "받아들이는 삶"이 성모님의 삶의 뿌리였습니다. 성모님이 보여주신 받아들이는 삶의 모습이 집약된 신비가 우리가 매일 바치는 로사리오의 신비입니다.

환희의 신비에서는 1단에서 천사의 말씀을 받아들이심을 묵상하고, 2단에서 친척 엘리사벳의 고통을 함께 받아들이고, 3단에서는 해산의 진통과 더불어 아기 예수를 받아들이시고, 4단에서는 율법의 계명을 받아들여 아기 예수를 봉헌하고, 5단에서는 아들의 성장에 따르는 현실의 아픔을 받아들이십니다.

빛의 신비에서는 성모님이 받아들여 키우신 예수께서 세상을 받아들이시는 신비가 전해지지요. 세례를 받아들이시고, 가나 혼인잔치로 대표되는 인간의 희로애락 삶을 받아들이시고, 말씀과 행적으로 복음을 선포하시며 병들고 가난한 모든 이를 받아들이시고, 거룩한 변모를 받아들이시고, 마지막 5단에서는 성체성사로 당신의 살과 피를 내어주실 아버지의 뜻을 받아들이십니다.

고통의 신비는 아들 예수와 더불어 성모님께서 함께 받아들이시는 고통으로 이루어졌지요. 1단에서는 피땀이 흐르는 고뇌를 받아들이시고, 2단에서는 육체적 고난인 채찍질을 받아들이시고, 3단에서는 정신적 모욕인 가시관을 받아들이시고, 4단에서는 이 모두가 공개되는 십자가를 받아들이시고, 5단에서는 고통의 극한인 십자가상의 죽음을 받아들이십니다. 그 곁에 서서 아들이 받아들이는 고통을 어쩌면 더 아프게 성모께서는 받아들이십니다.

로사리오의 마지막 신비는 성모님과 아들 예수님의 받아들이는 삶이 하늘에 받아들여지는 영광의 신비입니다. 1단에서 예수님의 부활로 십자가상의 수난과 죽으심이 아버지께 받아들여지고, 2단에서 승천으로 땅에 오신 예수님의 인간성이 신성으로 받아들여지고, 3단에서 성령강림으로 예수께서 계시지 않는 지상의 우리를 하느님의 영이 받아주십니다. 4단에서는 인간 가운데 제일 먼저 성모님께서 하늘에 오르시며 하느님께 받아들여지고, 마지막 5단에서 천상 모후의 관을 성모님이 받으심으로써 인간성이 신성에 받아들여집니다.

이처럼 로사리오의 신비는 성모님의 신비이자 인간 구원의 신비,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신비가 응축되어, 단순한 기도를 넘어서서 우리 삶이 하늘에 이르는 길을 전합니다. 지금 참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 무엇입니까? 무심한 남편, 야속하기만 한 아내, 철없이 속 썩이는 아이들, 병든 부모, 불의한 사회 제도, 너무도 힘든 직장에서의 처지 등등 어렵지 않으신 분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 모든 어려움을 없애달라고 빌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게 해 주시길 기도합시다. 지금 내게 주어진 시련을 그대로 다 받아들일 수는 없더라도, 거기 담긴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게 해 달라고 기도합시다. 아픔과 수난을 받아들이셨던 성모님께 의탁하고 우리 아픔을 봉헌합시다. 예수께서 우리의 어머니로 정해주신 성모님께서는 어머니이시기에 결코 우리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고, 당신이 온 삶에서 하느님의 뜻을 받아 드리셨듯이, 우리 어려움을 받아들이시어 아버지에게 기도해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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