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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31 13:23

월보지 2월 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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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ocucio - November, 2009



기본으로 돌아갑시다

비드 맥그리거, 하성환 역

레지오나 모든 레지오 단원들로서 우리는 우리의 모든 가능성을 깨닫기 위해 끊임없이 기본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레지오가 새로워지고 더 발전되려면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계속하여 기본을 분명히 하지 않으면 우리는 내부로부터 붕괴되고 정상이 아닌 길로 벗어나 성모님과 교회를 무너지게 할 위험의 가능성이 참으로 높습니다.


그러면 과연 기본이란 무엇일까요? 교본은 전체적으로 중요하고 절대로 간과해서는 안 될 기본을 설명하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더 중요한 부분이 몇 군데 있습니다. 저는 레지오 교본에서 절대적인 핵심은 레지오 선서문과 쁘레시디움의 매월 첫 주 회합에서 낭독하는 상훈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레지오의 이 두 가지 필수 규범을 자주 생각하고 기쁜 마음으로 계속 실천한다면 레지오는 필연적으로 단원의 성화와 진정한 사도직의 배움터가 될 것입니다. 레지오 선서문을 이해하기 쉽고 자세히 해설한 책으로 쉬넨스 추기경 Cardinal Suenens의 「사도직 신학The Theology of the Apostolate」이 있습니다.


선서문에 대해 살펴보자면, 선서문은 가장 본질적이고 기본적인 성령과의 대화이고, 우리를 영원히 변화시켜 완전히 새로운 삶의 방식을 시작하게 하는 출발점입니다. 우리는 성령께서 우리 삶의 바로 중심에 계시게 하고, 또 계셔달라고 아래와 같이 약속하고 청원을 하는 것입니다.


“지극히 거룩하신 성령이시여,

저는 오늘 레지오 마리애 단원으로 등록되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그러나 저 스스로는 합당한 봉사를 드릴만한 능력이 없사오니

저에게 오시어 저를 당신으로 채워 주소서.

제가 하는 보잘것없는 일들을 당신 힘으로 받쳐 주시며

당신의 위대한 목적을 이루는 도구가 되게 해주소서.”


그러므로 레지오 단원으로서 첫째로 해야 할 일은 성령을 우리에게 오시게 하는 것입니다. 성령께 전적으로 빠져들어야 합니다. 레지오의 시작기도 중 “오소서 성령님, 저희 마음을 성령으로 가득 채우소서”라는 이 구절은 레지오의 매 주 회합의 처음뿐만 아니라 레지오가 활동을 할 때마다 시작기도로 바쳐야 합니다. 레지오 안팎으로 레지오가 성령을 참으로 이해하고 사랑하고 성령께 영광을 드리는 곳으로 알려지는 것이 올바르고 적합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레지오 단원들은 성령께 헌신하고 성령 안에서 기쁘게 사는 사람들입니다. 성령은 레지오에서 절대적으로 으뜸가는 분이셔야 합니다.


그렇다면 레지오 안에서 어떻게 해야 성령과 이러한 관계를 만들 수 있겠습니까? 그 답은 선서문의 다음 구절에 있습니다.

“당신은 이 세상을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하려고 오셨으나

성모 마리아를 통하지 않고서는 역사하지 않으시고

저희 또한 성모 마리아 없이는 당신을 알아 뵈올 수 없고

사랑할 수도 없음을 아옵니다.

당신은 저희에게 모든 재능과 성덕과 은총을 내려 주시오나

성모 마리아를 통하여, 성모 마리아가 원하시는 사람들에게,

성모 마리아가 원하시는 때에, 성모 마리아가 원하시는 만큼,

성모 마리아가 원하시는 방법으로 베풀고 계심을 제가 아옵니다.

또한 제가 레지오 단원으로서 충실하게 봉사하는 비결은

당신께 완전히 하나되어 계시는

성모 마리아와 온전히 일치하는 것임도 잘 알고 있나이다.”


우리는 선서문을 낭독할 때 이 구절을 천천히 음미하며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여기에 레지오의 비결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정확히 무엇이 레지오의 비결일까요? 첫째로 레지오 단원은 성모 마리아 없이는 성령을 알아 뵙거나 사랑할 수도 없음을 깨달 아야 합니다. 두 번째의 비결은 성령께 완전히 하나되어 계시는 성모 마리아와 온전히 일치하는 것입니다. 이 비결의 마지막 부분인 ‘성모 마리아와 온전히 일치’를 강조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떤 일정한 시간이나 장소에서의 일치 또는 정말 마지못해 하는 일치가 아니라 언제든지 어느 곳에서나 아무 망설임 없이 우리의 영혼과 성모님과의 완전하고 절대적인 일치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모님과의 이러한 온전한 일치는 의심할 나위 없이 우리를 성령께 온전히 빠져들게 합니다. 성령께서는 성모님과 함께 예수님을 이 세상에 불러 오십니다. 니케아 콘스탄티노플 신경에 ‘El incarnates est de Spiritu Sancto ex Maria Virgine’(성령으로 인하여 동정 마리아에게서 육신을 취하시어)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이는 영원한 진실이고 레지오 단원은 이 진리 안에서 생활합니다. 성령과 성모님과 레지오 단원의 온전한 일치는 이같이 교리에 기초하며 특별한 성령의 은총이고 레지오의 소명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성모님과 또 성령과 일치함으로써 예수님을 이 세상에 모셔올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화입니다.

레지오에 대한 교리적인 토대가 명확하지 않으면 레지오는 약화되거나 상처를 입기 쉽습니다. 성령을 향해 온전히 열려 있기 위해서 성모님과의 온전한 일치를 이루도록 계속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면 레지오는 단원의 성화와 진정한 사도직의 배움터가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단원의 성화나 사도직을 통해 예수님께서 우리 자신이나 이 세상의 삶 안으로 들어오시기 때문입니다. 성령과 성모님의 도움이 있기를 바라며 다음 번 훈화도 기본으로 돌아가자는 주제로 계속하겠습니다.


꼰칠리움 영적 지도신부/ 서울 se. 국제서기







위풍당당한 마리아의 군인

하성호 요한

자기 딴에는 누구보다도 열심하다고 생각하던 어떤 할머니가 성모님께 자기 자랑을 할 겸 해서 이렇게 여쭈었다. “제가 묵주기도를 바칠 때마다 기도했다는 표시를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성모님께서 대답하셨다. “묵주기도를 드릴 때마다 그 표시로 콩을 하나씩 독에 넣도록 하여라.” 그 할머니는 성모님께서 이르신 대로 그렇게 하였다. 이게 어찌된 일인지, 할머니가 죽고 나서 독 뚜껑을 열었더니, 독 안에는 콩알 세 개만 달랑 있었다. 평생 정성으로 바친 기도는 고작 세 번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얼마 전 어떤 분이 단장님의 지시로 까떼나를 바친다면 그것도 활동보고에 넣어도 되느냐는 질문을 하였다. 단원들이 까떼나를 소홀히 하니까 단장이 까떼나를 하라고 지시를 내린 모양이다. 그 질문을 받고 어안이 벙벙했다. 까떼나를 바치지 않는 레지오 마리애 단원을 과연 레지오 마리애 단원이라고 할 수가 있을까? 맨 손과 알몸으로 총알이 빗발치는 전장에 나서는 꼴이다.

군인들은 매일 점호를 받는데, 그 때마다 상관들이 부하들의 병기를 점검하며, “병기는 귀관들의 목숨과 같다. 병기를 소홀히 다루는 것은 목숨을 잃는 자살행위임을 명심하라”고 강조한다. 녹이 슬어 방아쇠가 당겨지지 않는 총을 든 군인의 모습을 상상이나 할 수가 있을까? 그래서 의무적으로 소총수들은 매일 소총을 분해해서 먼지를 닦고 기름도 친다.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이 자신에게 부여된 기도를 바치지 않는다는 것은 녹슨 총을 가지고 전쟁하겠다고 나서는 꼴에 비교할 수가 있을 것이다. 적과 싸워 최후의 승리를 거두기 위해 군인들은 실전과 같은 훈련을 거듭하고, 각종 전술을 익히며, 자신들에게 지급된 병기들을 목숨처럼 아끼고 보관한다. 군인이 그렇게 하는 것은 그가 군인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고, 이는 선택사항이 아니라 군인의 의무에 속하는 것이다.

“각 레지오 단원이 지켜야 할 레지오의 의무” 네 가지가 있는데, 그 어느 하나라도 소홀히 여긴다면, 이는 군인의 의무를 소홀히 하는 군기가 빠진 군인과 같은 것이다. 그런 군인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군인이고, 군의 사기만 저하시킨다. 사기 충천하는 군인들이 열병하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투철한 군인정신으로 무장되어 어떠한 적과 싸워도 단번에 승리를 쟁취할 것 같은 위풍당당함을 지니고 있지 않는가!

레지오 마리애 단원이 되라고 신자들에게 권유하면, 핑계들을 되면서 그 권유를 뿌리친다. 그 핑계 가운데 가장 큰 핑계가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너무 바쁘게 살다보니까 주회에 나갈 시간도 없을 뿐 아니라, 더더구나 매일 묵주기도와 까떼나를 바칠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현대인에게서 기도를 빼앗아 간 현대주의의 위력은 참으로 대단한 것이다.

하지만 두려워 할 것은 하나도 없다. 왜냐하면 돈독한 신앙으로 기도하는 단원이 훨씬 더 많고, 그 단원들이 지닌 위력이 더 대단하기 때문이다. “주님께 대한 온전한 믿음과 마리아께 때한 굳은 신뢰심을 주소서. 이로써, 저희는 세상을 정복하렵니다”라며 기도하는 단원들의 활동보고를 듣고 있노라면, 그 단원들 안에 성모님이 활동하고 계심을 금방 깨닫게 된다. 그분들은 조금도 교만하지 않지만, 그분들의 신앙생활엔 언제나 위풍당당함이 철철 넘쳐난다. 기도와 활동이 레지오 마리애의 생명이다. 우리가 바로 기도와 활동을 생명처럼 여기는 위풍당당한 성모님의 군사들이 되어 반드시 세상을 정복하여야겠다.

대구 se. 지도신부



하느님의 어머니

김용호 아브라함

많은 개신교 신자들은 천주교에 대한 비판을 할 때, 이런 질문들을 합니다. 왜 성모님을 믿느냐? -물론 우리는 성모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왜 성모님께 기도를 드리느냐? 왜 성모님을 하느님의 어머니라고까지 부르냐? 등등.

특히 성모님을 하느님의 어머니라고 부르는 이유를 생각해 보면 참 이상합니다. 예수님은 인간이셨고, 그리스도이신데, 그럼 성모님을 예수님의 어머니, 그리스도의 어머니라고만 부르면 될 것을 왜 굳이 하느님의 어머니라고 부르는 것일까?

그것은 단순히 성모님을 높이려는 의도에서 하느님의 어머니라고 부르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단어의 중심은 성모님이 아니라 예수님입니다.

교회가 성모님께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칭호를 부여한 시기인 431년, 이 시기에는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에 대한 신학적인 싸움이 있었습니다. 어느 누구는 예수님은 인간이 아니라 신神일뿐이다! 어느 누구는 예수님은 하느님이 아니라 하느님께 선택받은 위대한 인간일 뿐이다! 어느 누구는 예수님은 인간이기도 하고 신이기도 한데 이 둘이 혼동되기도 하고, 분리되기도 하고, 구분되기도 하고, 변형되기도 한다! 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에 교회에서는, 예수님은 온전히 하느님이며 온전히 인간이심을 드러내기 위해 당시 많은 신자들 안에서 퍼져 있던 단어인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단어를 택하게 된 것입니다. 물론 성경에서 예수님을 잉태한 성모님이 엘리사벳을 방문했을 때,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라는 엘리사벳의 말이 그 근거가 되기도 합니다.

431년 에페소 공의회 문헌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말씀’이 마리아에게서 당신의 신성을 이끌어 내셨기 때문이 아니라, 이성적 영혼을 부여받은 거룩한 육체를 마리아에게서 얻으셨기 때문에 마리아는 하느님의 어머니이며, 하느님의 말씀이 그 위격에서 육체와 결합하였기에 사람의 몸으로 나셨다고 일컬어진다.”

우리는 분명 하느님이자 인간이신 예수님께 대한 믿음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고, 이렇게 성모님의 군단이 되어 하느님나라를 위한 선교와 복음화에 힘쓰고 있습니다. 우리 신앙의 대상인 하느님은 너무나도 심오하면서도 인간으로까지 되신 분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참 확실합니다. 단지 저 멀리 하늘에만 있는 신을 믿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신앙의 모범을 보여주시는 분이 성모 마리아이고, 우리는 성모님의 삶처럼 예수님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니 우리 모두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성모님의 신앙을 통해 주님께 대한 우리의 신앙도 더욱 굳건히 하여 성모님의 군단으로서 충실히 기도와 활동에 참여하면 좋겠습니다.


신부, 대전교구 조치원본당 보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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