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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01 14:45

3월호 월간지 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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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절과 성모신심

베데 맥그리거/하성환 프란치스코

  대림절은 성모님이 우리 삶에서 어떤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지를 숙고할 수 있는 좋은 시기입니다. 대림절은 아기 예수님이 오시기를 준비하는 시기입니다. 대림절은 또한 우리 주님을, 온 마음과 목숨을 다하여 맞이하는 시기입니다. 대림절은 주님과 우리의 관계가 새로워지고 깊어지는 시기입니다. 이렇게 주님과의 관계를 깊이 하는 데 성모님보다 더 우리를 잘 도와주시는 분은 없습니다. 오래 전에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이 말했듯이, 성모님은 아기 예수님을 뱃속으로 맞이하기 이전에 마음heart으로 맞이하신 분입니다. 성모님은 그분의 아기이면서 하느님이신 분을 만나기를 갈망하셨습니다. 우리가 성모님과 일치하면 우리는 ‘예수님을 기다림’이라는 대림절의 참된 정신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이번 대림절에 저는 몽포르의 루도비코 마리아 성인과 레지오 교본 정신에 따라 ‘성모님께 대한 신실한 신심’에 대해 몇 가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저는 온 세계가 성모신심을 증진하도록 강조하고 싶습니다. 맨 먼저 전 세계의 우리 레지오 단원들 안에서, 다음엔 우리 레지오 단원들이 사도직 활동을 통하여 만나는 모든 사람들 안에서, 그리고 다음으로는 특히 비가톨릭 형제자매들 사이에서 성모신심이 증진되기를 바랍니다. 성모님께 대한 신실한 신심이 더프 형제의 내면의 삶과 레지오 창설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었는지는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 레지오는 성모신심을 잘 이해하고 그 정신으로 살아갈 때 가장 훌륭한 상태에 있게 됩니다.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가 성모님께 대한 신실한 신심을 소홀히 하거나, 그 신심이 약해질 때 우리는 레지오 정신의 희미한 그림자만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레지오 단원으로서 살아가기 위해서 뿐 아니라 더 성장하기 위해서도, 끊임없이 우리 신앙의 뿌리로 되돌아갈 필요가 있습니다. 프랭크 더프 형제의 편지의 한 구절을 소개하겠습니다. “신실한 신심생활을 실천하는 요체는, 우리 안에서 은총을 가득히 받으신 성모님과 일치를 이루는 것입니다.” 이게 가장 중요합니다. 우리는 사랑에 관한 사도 요한의 말씀을 여기에 대비할 수 있습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아우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성모님의 영향을 의식하건 못하건, 심지어 우리가 성모님을 전혀 모른다 할지라도 우리 영혼의 모든 것이 엄마로서의 성모님의 영향을 받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성모님의 역할은, 아직 미성숙한 아이가 모든 면에서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엄마의 역할과 똑같습니다. 루도비코 마리아 성인도 말했듯이, 성모님께 온전히 의탁하는 것은 비현실적인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미 성모님께 이렇게 의탁하고 있으며, 우리가 성화된다는 것은 이런 신심을 인정하는 바로 그것입니다. 따라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성모님과 일치하고 그분께 전적으로 의탁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주님이 몸소 성모님께 대한 신심의 모범이 되셨습니다. 이것은 특히 대림절과 성탄 시기에 분명해집니다. 아홉 달 동안의 잉태 기간 동안에 하느님께서는 특별한 방법으로 성모님께 자신을 맡기셨습니다. 예수님의 피와 심장 박동은 엄마의 것과 하나였습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성모님의 몸 안에 계시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으시고, 성모님의 엄마 사랑에 전적으로 자신을 내맡기셨습니다. 성모님께서는 예수님의 육화와 모든 구원사업에 대해 “예”라고 순명하셨으며, 예수님은 이런 성모님께 자신을 온전히 의탁하셨습니다. 하느님의 계획 속에서 성모님은 하느님과 인간이 만나는 가장 중요한 접점입니다.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구원계획에서 성모님 역할의 핵심은 마음heart입니다.



프랭크 더프 형제의 편지에서 한 마디를 더 인용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성모님의 중재라는 주제에 대해 묵상을 합니다. 성모님의 역할에 대한 좋은 예로 우리 몸의 목을 들 수가 있습니다. 버나드 성인도 이 예를 들기를 좋아했었지요. 또 레지오 교본을 보면 심장의 이미지와 닮았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가 있습니다. 심장은 머리(두뇌)에 종속되어 있지만 머리의 지시를 받아 동맥을 통하여 온 몸에 피를 공급합니다.” 성모님의 심장은 신실한 성모신심을 실천하는 핵심 이미지입니다. 우리 주님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는 우리 삶의 모든 면에서 성모님께 온전히 의지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직장이나 가정생활에서, 아플 때나 건강할 때나, 쉴 때에 타인과의 모든 관계에서, 무엇이 되었건 모든 것을 성모님과 일치시킵니다. 우리는 일생을 통하여 끊임없이 하느님의 은총과 성모님 중재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갑니다. 성모님의 마음은, 더프 형제가 말했듯이 무엇보다도 어머니의 마음입니다. “성모님은 무엇보다도 한 분의 어머니이기 때문에, 그분을 원죄 없으신 분이라 부르는 것만으로, 그분을 모든 여인 중에서 가장 위대한 여인이라 부르는 것만으로는 충분치가 않습니다. 이런 것들은 성모님이 첫째는 우리 주님의 어머니이며, 다음으로 모든 인류의 어머니라는 사실 다음에 오는 것입니다.” 진정한 성모신심은 지식으로나 실제에서 “이분이 너의 어머니시다” (요한 19,27) 라는 우리 주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입니다.

  이 훈화에서 우리는 신실한 성모신심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겨우 한 발자국 내디뎠습니다. 우리는 다가오는 성년에도 성모신심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하게 될 것입니다. 성모님과의 올바른 관계는 모든 레지오 단원들의 의무입니다. 만약 모든 단원들의 마음속에 이것이 자리 잡고 있으면, 모든 사도직을 거룩하게 수행하게 됩니다. 이번 대림절과 성탄에는 우리 주님의 생애에서 성모님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묵상하도록 합시다. 우리 주님이 성모님과 어떻게 일치를 이루고 그분께 의탁하셨는지를 묵상하도록 합시다. 우리 주님의 모범을 따르도록 합시다. 아멘.

  꼰칠리움 영적 지도신부/서울 Se. 국제서기


  


우리의 삶, ‘세상의 빛과 소금’

전동기 유스티노

󰡔무엇하는 사람들인가󰡕 라는 교리서 제목처럼, 우리는 스스로 ‘나는 무엇하는 사람들인가’ 자문해봐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무엇하는 사람들인가를 더욱 명확히 하기 위해서 우리는 누구를 위해서, 무엇을 위해서, 또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물음에 대해서 먼저 겸손되이 대답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누구를 위해서 살아야 하는가?

우리는 하느님에 의해서 사랑으로 창조되었기에, 하느님을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하느님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눈에 안 보이는 하느님을 위해서 산다는 것은 달리 말하자면, 하느님의 모상으로 지음 받은 눈에 보이는 다른 이웃을 위해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바로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언제나 가난한 이웃을 그냥 못 본체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웃을 위해서 살아가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숨 쉬고 살아야죠. 그런데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로서, 그리스도의 숨을 쉬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향기를, 그리스도의 향기를 맡자는 것입니다. 그것도 우리만이 아니라 아직도 그리스도를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요. 다시 말해서(축농증에 걸려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맡을 줄 모르는 자들이, 그 아름다운 향내를 맡을 수 있도록 인도하자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스스로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하는데, 빛이 된다는 말은 스스로 모범이 된다는 말입니다. 어두운 밤에 산길을 걸을 때는 빛이 있어야 올바른 길로 갈 수 있습니다.

거울은 스스로 빛을 내지 못하고 그저 반사할 뿐이지만, 빛은 스스로 비추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 빛을 보고서 올바른 지침을 마련하고 실천에 옮길 때, 타의 모범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아하, 저 사람 천주교 신자구나” 하는 말을 들을 수 있을 만큼, 모범적인 삶을 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렇게 모범이 되기 위해서 구체적으로 어떠한 삶이어야 하는가? 소금의 삶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냥 바라만 보는 방관자의 삶이 아니라, 완전히 그 안에 깊숙이 들어가서 자신을 녹여 형체도 남기지 않고 사라지면서, 타인에게 참된 맛을 주는 소금의 삶이어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자신을 내어 던지는 투신의 삶을 말합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가?

하느님을 찬미하고 흠숭하기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그것도 모든 사람이 그렇게 하도록 하기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인간들끼리 서로 지지고 볶고 하면서, 하느님을 찬미한다는 것은 모순이죠. 그래서 우리는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해서, 우리는 우리 모두의 참 행복을 위해서 살아야 한다라고 답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참 행복이란 가족적 이기주의라든가, 물질적인 풍요에서 오는 행복 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평화를 느끼는 행복인 것입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우리는 무엇하는 사람인가? 우리가 무엇하려고 이러고 있는가? 우리는 누구를 위해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하는 것에 대해서, 자주 자주 반성했으면 좋겠습니다.

부산 Re. 지도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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