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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02 15:37

11월의 월간지 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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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나누고 섬기면서

안상기․미카엘 신부



차를 타고 가는 길에 저는 늘 평화방송 라디오를 듣습니다. 이 이야기도 라디오에서 들은 이야기입니다.

  한 조각가가 작업을 하다가 오른손을 다칩니다. 삶의 의미이자 생명과도 같은 조각을 못하게 된 그는 오래도록 절망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모든 것을 원망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그 조각가는 누군가와의 관계를 통해서 기도를 알게 되었고, 그 속에서 희망을 찾아냈습니다. 왼손으로도 조각을 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마침내 그는 해냈습니다. 더 많은 정성과 땀을 흘린 오랜 시간 끝에 전시회를 열었고, 두 손으로 조각한 작품을 전시했을 때보다 더 좋은 결과를 얻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심경을 담아 조각전의 이름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고 붙였습니다.

우리가 살다보면 자신이 원하지 않았지만 고통의 한 가운데 서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지라도, …해야 할 일이 그렇지 않은 일보다 더 많은 것이 사실이지요.

레지오 지도 신부를 맡아 매월 회합에서 간부들을 만나면 하소연을 듣습니다. 선교는 물론 단원확보에 힘이 든다고요. 그때 저는 다음의 성경말씀을 인용합니다.

󰡒신자들은 모두 함께 지내며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했다. 그리고 재산과 재물을 팔아 모든 사람에게 저마다 필요한대로 나누어 주곤 했다. 그들은 날마다 한마음으로 성전에 열심히 모이고 이 집 저 집에서 빵을 떼어 나누었으며 즐겁고 순박한 마음으로 음식을 함께 먹고 하느님을 찬미하며 온 백성에게서 호감을 얻었다. 주님께서는 날마다 그들의 모임에 구원받을 이들을 보태어주었다.󰡓(사도 2,42-47)

우리는 관계 속에서 삽니다. 하느님과의 관계, 사람과의 관계, 심지어는 동물과 식물까지도 우리는 관계에서 벗어나 살 수가 없습니다. 저는 그 관계를 내 마음의 밭과 씨앗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내 마음의 밭에 심은 씨앗을 어떻게 가꾸느냐에 따라서 상대방의 마음 밭에 심은 내가 결정됩니다. 좋은 사람이면 더할 나위가 없지만,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내 마음의 밭에 심은 씨앗을 정성껏 가꾸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사람의 마음 밭에 심은 내 씨앗이 잘 자라도록 내 마음과 행동을 아름답게 보여주어야 합니다.

한껏 해 주었는데 알아주지 않는 상대방 때문에 섭섭함이 남더라도, 문전 외면과 면전 냉대를 당하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에게 호감을 주는 사람이 되려고 더 노력하십시오. 그리고 자신들의 생활로 호감을 받았던 초기신자들의 공동체를 생각하십시오. 지금 우리 신자 여러분이, 레지오 단원 여러분이 본받아야할 점입니다. 호감을 주는 사람이 되십시오. 즐겁고 순박한 마음으로 나누고 함께 기뻐하면 사람들에게 호감을 얻습니다. 그것을 통해서 전교하십시오. 단원들의 마음 밭에 서로 서로 좋은 씨앗으로 심겨져서 아름다운 말과 행동으로 서로의 밭을 돌보십시오.

비신자들은 우리와 달라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볼 수 없지만 그분을 믿는 사람을 보고 하느님을 느낍니다. 똑같이 옳지 않은 행동을 해도 신자가 하면 비난이 더 큽니다.  

󰡐서로의 발전을 위해서 고쳐주고 지적하는 가정󰡑과 󰡐좋은 부분만 보고 칭찬하는 가정󰡑의 경우 어느 가정이 더 발전하고 행복한 가정이 될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누구를 만나든지 상대방에게 내 자리를 긍정적으로 아름답게 심고, 자라게 하십시오. 우리 교구 40주년, 레지오 54주년 공동기도문 속에 명시된 대로 󰡐서로 나누고 섬기면󰡑 그것이 바로 선교이자, 단원확보의 지름길이 될 것입니다.ß]


안동 Re. 담당사제

  

  

레지오 단원의 지상 과제인 선교

정운석․사도요한


하느님의 자녀인 우리들은 주님께서 마지막 유언으로 남기신 지상 명령인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믿고 세례를 받는 이는 구원을 받고 믿지 않는 자는 단죄를 받을 것이다󰡓(마르 16,15-16)는 말씀을 머릿속에 각인시키고 충실한 주님의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의 자녀이자 레지오 마리애 단원이 복음(선교)을 전한다는 것은 실로 당연한 일입니다. 모든 단원들이 선교에 주력하여 하느님 보시기에 참으로 기특한 단원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저는 거의 매일 아침, 이러한 기도를 올립니다. 󰡒모든 레지오 단원들이 새 가족과 새 단원을 무수히 많이 봉헌할 수 있도록 용기를 주십시오.󰡓 모든 단원들이 같은 마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렇게 기도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올해는 특별히 바오로 성인의 탄생 2000주년이 되는 해로서 바오로 성인의 발자취를 생각하며, 선교에 주력하는 해(2008.6.29-2009.6.29)이기도 합니다. 또 지정된 성당과 성지에서는 전대사를 수여하고 바오로 교육, 피정, 선교학교 등을 신설하여 성인의 발자취를 따르는 신심을 심어 주고 있습니다, 성인께서는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한 선교여행을 다니셨는데, 언어와 음식과 기후와 잠자리까지 어느 것 하나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광범위한 지역을 주님께 대한 열정으로 오로지 주님의 말씀 하나만 믿고 선교 여행을 하였던 것입니다.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바치신 하느님의 아드님에 대한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갈라 2,20) 바로 이 말씀이 성인의 삶의 이정표가 되었으리라 생각합니다.

󰡒하느님의 힘에 의지하여 복음을 위한 고난에 동참하십시오.󰡓(2티모 1,8) 사도께서 당신의 제자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현재를 살고 있는 레지오 단원은 영광스럽게도 바오로 성인을 스승으로 모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살아야 할 것입니다. 주님이 함께 하시는 한 우리가 두려움 없이 살아가도록 도움을 주실 것을 믿고 살아야 하겠습니다. 성인의 삶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부끄러움을 안겨주는 모습입니다. 성인은 감히 상상키 어려운 놀라운 일들을 하며 선교 사업에 전념하셨습니다.

성인의 모습을 알지 못하여서 그러려니 하지만, 레지오 단원들 중에는 겨우 본당 관할구역에 활동을 내주어도 제대로 활동하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게 됩니다. 우리 다 함께 성찰해봅시다. 너무나 편안함에 길들여져서 조금만 어려움에 처해도 바로 나약해지지는 않습니까?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해 주셨고, 성모님과 성령께서 항상 도움을 주시는데도 미처 하느님을 깨닫지 못하고 사는 것은 아닙니까? 이 편한 세상에 태어나서 십리도 안 되는 성당지역을 못 돌아본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참으로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또 교만에 찬 우리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일이 잘되면 모든 것이 다 내 뜻에 의하여, 내가 잘하고 있으므로 다 내덕이라고 교만에 찬 목소리를 내고 있지는 않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레지오 단원 중에는 그러한 분이 없겠지만, 어느 신부님이 강연 중에 하신 말씀이 생각납니다. 󰡒신자들 중에는 용하다는 신부님을 찾아다니다가 성에 차지 않으면 점집으로 간다󰡓는 말씀을 듣는 순간, 한편 기가 막히기도 하고 과연 올바른 신자라면 그러겠는가, 반문했던 기억이 납니다. 나약한 인간이긴 하지만, 우리는 레지오 단원입니다. 흔들림 없는 신앙생활을 위해 주님께 한발 한발 더욱더 가깝게 다가서야 하겠습니다.

단원 여러분! 우리가 무엇이 잘났는지 생각해봅시다. 그저 인간의 탈을 쓰고 있을 뿐, 우리 자신은 너무 무기력하지 않는지요. 내 뜻대로는 되는 것이 없고 남의 탓만 일삼고, 언제나 잘난 척하지만 속은 텅 빈 강정이며, 제멋대로인 내가 아닌지요. 이나마도 모르고 사는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내가 아니던가요? 이제라도 조금씩 나를 발견하고 부족함을 고백하며, 성모님께 성령께 넙죽 엎드려서 하시고자 하는 일이 무엇인지 헤아려보는 것이 참된 일꾼이 되는 지름길이며, 성모님의 예쁨 받는 자녀가 되는 것이 아닌가요? 그나마 이 정도 알아차리기만 해도 꽤 괜찮은 단원일 것입니다. 주님이 주신 사명이 무엇인지 생각하며 실천할 때라고 여겨집니다.

󰡒선포하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들을 수 있겠습니까?󰡓(로마 10,14) 맞습니다. 누가 알려주지 않는다면 어디에 천당이 있고, 연옥이 있으며, 지옥이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복음을 전해 듣지 못하면 누구나 다 알 수가 없기에 우리 단원들은 이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내 이웃, 형제, 가족, 동료 등 내 주변의 모든 사람에게 전하는 복음이야말로 하느님을 전하는 최고의 활동이 됩니다, 선물이 됩니다. 󰡒말씀을 듣고 실행하라󰡓(루카 8,21 참조)는 말씀이 있습니다, 말씀을 듣는 것이 우리의 믿음이고, 우리의 신앙이 아니던가요? 믿음이 없으면 선교를 할 수 없습니다. 신앙인으로서 믿음이 없어 보인다면 얼마나 서글프겠습니까? 복음 말씀이 우리의 신앙을 살찌울 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 보시기에 참 좋은 모습, 곧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요한 13.35)는 말씀을 실천하는 성숙한 신앙인이 될 때 전교에 보탬이 되지 않을까요?

󰡒믿음은 들음에서 오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이루어집니다󰡓(로마 10,17) 라고 합니다. 이 말씀을 듣고도 활동하지 않는다면 레지오 단원이라고 할 수 있겠는지요. 활동은 방법을 달리한 기도라고 합니다. 활동이 겸손하고 거룩하게 온 정성을 다하여 드리는 기도와 같다면 어찌하겠습니까? 기도가 없는 사람은 하느님을 뵈올 수 없습니다. 또 활동은 레지오의 심장이라고도 하지 않던가요? 숨 쉬지 않는 육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체에 불과합니다. 󰡒내가 복음을 선포하지 않는다면 나는 참으로 불행할 것입니다󰡓(1코린 9,16) 활동이 없는 레지오는 죽어 있는 레지오라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열심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활동(선교)합시다. 그리하여 숨 쉬는 레지오, 생동감 넘치는 레지오를 만들어 봅시다. 󰡒너희는 그분의 나라를 찾아라. 그러면 이것들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루카 12,31) 이 모든 것이 주님의 영광을 위해 바치는 우리의 기도가 되어 한평생 레지오 활동을 하다가 한 사람도 빠짐없이 주님의 나라에서 다시 모일 수 있도록 노력합시다. 󰡒너희는 어찌하여 나를 󰡐주님, 주님󰡑하고 부르면서, 내가 말하는 것은 실행하지 않느냐?󰡓(루카 6,46)

하루하루 주님께 털끝만큼도 부끄럽지 않게 살기 위하여 부단히 노력합시다. 아멘.ß]

  
수원 Re. 단장

  





레지오와 사제

맥그리거 신부 / 강용대 역

레지오 마리애와 하느님의 종 프랭크 더프 형제의 정신세계를 이해하는데 가장 권위있는 근거는 교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본을 해석하는 좋은 방법은 창설자의 저서나 논문, 또는 편지들을 살펴보는 것입니다. 만일 이러한 글들을 소홀히 한다면 아마 레지오는 그 내용에서 허약해질 수 있습니다. 그 글들은 교본의 축약된 참고서가 되고 그의 기본적인 신념이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를 보여주며, 또는 교본에 혹시 있을 수 있는 틈새를 채워주기도 합니다. 교본은 레지오의 필수적인 것을 모두 포함하고 있지만 프랭크 더프 형제의 다른 글들은 교본을 이해하는 데 힘을 더해 주는 귀중한 수단이 됩니다.

오늘은 프랭크 더프 형제의 󰡐우리의 보호자이신 성모님󰡑이란 글속에 비추어진 성모님의 승천에 대하여 묵상해 보겠습니다. 창설자가 해온 레지오의 모든 활동이 󰡐우리 어머니이신 성모님󰡑이란 호칭에서 유래하였다는 것을 쉽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는 그 호칭이 그저 반복적으로 암송하다 보면 힘을 잃게 될 수도 있다는 점을 걱정하면서 그 호칭이 하느님께서 하시려는 모든 것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해 달라고 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 마음을 활짝 열어서 이 호칭에 귀한 선물을 담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 󰡐성모님은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십니다. 그러나 그 사랑은 어떤 면에서는 감성적인 것이 아닙니다. 성모님의 사랑은 풍성하고 실질적이며 그리고 우리 삶의 모든 면에서 함께 하십니다. 갓난아기에게 엄마가 필요하듯이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그 사랑은 더욱 원대합니다. 갓 태어난 아기는 엄마 없이도 어떻게든 살아나갈 수 있지만 영혼은 성모님 없이는 어찌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교회의 기본적인 가르침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성모님은 하느님 구원사업의 일부로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는 당연히 받아들여지고 함께 하여야만 할 명제입니다.󰡑

위대한 성인을 위시하여 영적인 글을 쓰는 많은 분들이 성모님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습니다. 지금까지 이 세상에 살았던 모든 어머니들의 사랑을 한 마음에 담는다 하더라도 그것은 어머니로서 우리를 향한 사랑을 담은 성모님의 마음과는 견줄 수가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만으로는 우리에게 성모님이 주시는 어머니로서의 보살핌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미치게 됩니다. 그래서 프랭크 더프 형제는 더 나아가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 󰡐성모님의 어머니로서의 마음은 거의 한계를 지울 수 없는 무한한 것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미리 세우신 당신 뜻의 신비(에페 1,9)안에 이미 포함되어 성스러운 사랑을 나타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신비한 계획의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성모님의 모성애는 모든 면에서 그 본질을 훨씬 뛰어넘는 것입니다. 많은 여인들이 아이들을 원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을 원하는 여인들도 가끔 그들의 사랑을 마지못해서 주거나 또는 아이들에게 사랑을 표시하는 방법이 서툽니다. 그러면 아이들은 고통을 받습니다. 그러나 성모님은 우리들에게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시고, 완전히 주의를 기울이며, 기쁘고 인상적인 방법으로 우리를 돌보시는 어머니이십니다. 프랭크 더프의 말을 한 번 더 인용해 보겠습니다.: 󰡐성모님의 숙명은 첫째로는 그리스도의, 그리고 나아가서는 전 인류의 어머니가 되는 것이므로 하느님께서는 이 일이 완벽하게 이루어지도록 성모님을 창조하셨습니다.󰡑

성모님이 아드님이신 예수님과 또 다른 자녀들인 우리들에게 주시는 사랑에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성모님은 예수님과 우리들을 하나로 여기시고 실질적으로 동일시하십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사랑은 다름이 없는 단 하나의 사랑이십니다. 따라서 성모님의 사랑은 유일하며, 멈춤이 없고, 소멸되지 않는 사랑입니다. 그것은 떼어내거나 박탈해버릴 수도 없습니다. 그것은 가장 아름다운 행동의 증거이며, 무시와 증오까지도 이겨냅니다. 바로 이것이 결코 변치않는 믿음직스러운 사랑인 것입니다.

그러면 이 모든 것들이 성모님의 승천과 어떻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일까요? 성모님께서는 승천을 통하여 더욱 완전하게 우리들의 어머니가 되셨습니다. 축복 속에서 성모님은 우리들 하나하나를 비교할 수 없이 순수하고 세세한 사랑으로 바라보고 계십니다. 성모님은 하느님의 어머니로서 뿐만 아니라 우리의 어머니로서도 승천을 하신 것입니다. 그것은 크나큰 희망의 축복입니다. 예수님의 은총으로 성모님은 우리에게 천국의 문을 활짝 열어 주셨습니다. 우리의 어머니이신 성모님으로 인하여 우리는 이제 하느님의 한 가운데에 서 있을 수 있습니다. 이는 우리 어머니께서 지금 그분 곁에서 우리를 위하여 중재하여 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어머니께서 영혼과 육신이 모두 천국으로 들어올림 받은 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희망이며 위로의 표지이겠습니까! 우리는 어느 면에서 우리가 성인이 되기 위해 애쓰는 진정한 노력이나 또는 사람들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한 우리의 사도직에 부족함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모님께서는 영적으로 부족함을 지닌 자녀들의 어머니이시며, 또한 죄인들의 피난처이십니다. 많은 성인들은 천국에 가게 되면 이 세상을 위해 좋은 일을 하면서 지내게 되리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면 성모님은 무슨 일을 하실 것 같습니까? 성모님은 너무나 진실되고 완전하신 우리의 어머니이기 때문에 끝없이 우리를 위해 하느님께 중재하시는 일을 하실 것입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창설자가 한 말을 한 마디 더 인용하면서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그에게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우리 어머니이신 성모님󰡑이란 호칭은 그의 삶에 중심을 이루는 소중한 것이며, 또한 성모님 안에서, 성모님과 함께, 성모님을 통하여 다른 사람들의 영혼을 구원하려는 일생의 소망을 이루는 과정인 것입니다. 󰡐이것은 세상의 모든 사람이 마음속으로 간절히 원하는 것이지만 결코 이 세상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것이기에, 그에게 그것이 성모님을 통하여서만 가능하다는 것은 얼마나 매력적인 유혹이 되겠습니까? 또한 이러한 생각을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 준다면 그들이 얼마나 감동을 받겠습니까? 이러한 시각으로 성모님을 생각하면 다른 사람들의 영혼에 미치는 성모님의 영향력이 활짝 열리게 됩니다. 이러한 생각만으로도 우리는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성모님에 대하여 설명하여야 합니다. 성모님이 바로 그들의 어머니이시기 때문에 그들은 성모님을 알아야 합니다. 또한 그들은 그들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성모님의 돌보심을 받아야 합니다. 레지오는 그동안 끈질기게 여러분들에게 이 점을 강조해왔기 때문에, 성모님의 사랑의 보석이 세례를 받았든지 안 받았든지 간에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 뿌려진 씨앗으로 심겨져 왔습니다. 그것은 그들을 위한 따뜻한 손길에 본능적으로 응답할 것입니다.󰡑ß]

꼰칠리움 영적 지도 신부 / 서울 Se. 국제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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