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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01 14:42

8월호 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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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작을 위하여!

박종일․프란치스코

송(宋)나라에 어떤 농부가 살고 있었다. 하루는 밭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난데없이 토끼 한 마리가 빠르게 뛰어가다가 나무밑동에 부딪혀 죽고 말았다. 무심코 이 광경을 보고 있던 농부가 죽은 토끼를 주워들고 매우 기뻐하면서 󰡒오늘은 참 재수가 좋은 날이야! 아침 일찍부터 힘 안 들이고 이렇게 통통한 산토끼 한 마리를 얻었으니 말이야. 매일 이런 일이 생긴다면 밭에서 고생을 할 필요가 없을 텐데.󰡓 이렇게 생각한 농부는 다음 날부터 밭일을 집어 치우고 하루 종일 그늘에 앉아 토끼가 나무밑동에 부딪혀 죽기만을 기다렸다. 이웃 사람들이 농부에게 그런 요행을 기다리지 말고 열심히 농사를 지으라고 충고했지만, 농부는 듣지 않았다. 하지만 그 후로 토끼는 한 마리도 나타나지 않았고, 결국 농부는 뒤늦게 후회하며 자기 밭으로 돌아갔으나 기다리고 있는 것은 곡식이 아니라 잡초들로 우거진 밭뿐이었다.

󰡒수주대토(守株待兎)󰡓라는 고사성어의 얘기입니다. 즉 힘들이지 않고 요행만 기다리는 어리석은 사람을 이르는 말이지요.


올해로 교구별 레지오 도입 50주년을 기념하는 대회가 대체로 마무리되는 것 같습니다. 짧지 않은 세월동안 한국 교회사에 뚜렷이 남긴 레지오의 발자취를 회고하며 새로운 도약을 위한 기회로 삼고자 자축하고 기념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들 앞에 놓인 현실은 그리 순탄치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세상살이가 날로 팍팍해져서 그런지 지금의 레지오 활동이 예전 같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느새 자만에 빠진 듯한 모습에서는 긴장감마저 찾아볼 수 없고, 고사 속의 농부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우리들이 기념하고 자축한 금경축도 과거의 성과에 집착하기보다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고 한층 더 내실을 다지려는 의지가 더 요구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복음전파보다는 손쉬운 본당봉사나 개인적 활동에 더 비중을 두고, 실질보다는 겉으로 드러나는 허식에 무게중심이 옮겨진 듯한 현실은 우리 모두가 위기감을 갖고 대처해야할 과제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나태와 패배주의가 아니라 타성에서 벗어나려는 자기쇄신입니다. 목표한 일에 도전해보지도 않고 지레 겁먹은 표정으로 그렇게 될까? 미리 내 자신을 패배의 올가미에 가두어놓는 일은 없어야 됩니다. 그저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은 나태한 삶은 자신이나 레지오를 위해서도 결코 올바른 일과가 될 수 없습니다. 지난날의 성공을 계승하고 주어진 소명대로 세상을 그리스도의 빛 아래 새롭게 질서지우는 복음화의 길에 앞장서는 것이야 말로 레지오의 본래 모습입니다.

  

이솝 우화에 나오는 배고픈 여우 이야기가 있습니다. 여우가 먹음직스럽게 늘어진 포도밭을 지나게 되었는데, 그것을 보고는 따먹으려고 애를 썼으나 손이 닿지 않았습니다. 여우는 그 자리를 떠나면서 혼잣말로 중얼거렸습니다. 󰡒저건 아직 덜 익었어, 시어서 먹을 수 없는 포도송이야󰡓하고 말입니다. 이렇게 우리들도 모르는 순간에 수많은 일들을 󰡐신포도󰡑라고 우기고 있지는 않은지... 과연 먹어 보지도 않고 그것이 익지 않은 신포도라고 단정할 수 있을까요? 오히려 남들이 잘 따먹을 수 없는 곳에 있는 것이 더욱 달고 맛난 포도송이일 것입니다. 자기 쇄신보다는 나태한 삶의 연속, 미래보다는 당장의 눈앞의 이익에만 급급해하며, 자기 합리화에 골몰하는 레지오 단원들이라면 미래의 희망을 얘기할 수가 없겠지요.

늘 고인 물처럼 답답하고 결국에는 썩고 말테니까요.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라고요? 아닙니다. 오르지 못할 나무라도 한번 도전해봅시다. 결코 우리들이 먹지 못할 신포도가 아니니까요.ß]

마산 Re. 단장

  



단원들의 믿음의 힘

이석구․대건 안드레아

신앙은 무엇이며, 우리에게 무엇을 줍니까? 하느님을 믿는 것이며, 영원한 생명을 줍니다. 믿음에 무슨 힘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주님께서는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산마저 옮길 수 있다고 강조하십니다(마태 17,20 참조). 정말 그럴까요? 사실 믿음 때문에 옮겨진 산은 없으나, 산처럼 강하고 꿈쩍하지 않던 것들도 믿음 때문에 움직인 예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인내입니다. 포기하지 않는 끈기입니다. 얼마만큼 인내심을 가지고 믿는지가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이 돌무화과나무더러 󰡐뽑혀서 바다에 심겨라󰡑 하더라도, 그것이 너희에게 복종할 것이다󰡓(루카 17,6) 그러나 우리가 그렇게 말했다가는 정신 나간 사람으로 몰리기 십상입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겠습니까? 먼저 우리의 판단으로 불가능한 일도 하느님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님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 뒤에라야 복음에 나오는 돌무화과나무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세상의 판단으로는 불가능한 일을 믿음으로 극복해 본 사람만이 󰡐바다에 심겨지는 돌무화과나무'를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믿음에 대한 보답은 언제나 주어집니다. 그렇지만 󰡐이만큼 기도했으니 이 정도는 주시겠지󰡑하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우리의 생각일 따름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언제든지 주십니다. 주시지 않을 때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가 묵상하고 찾아야 할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잘못 청하거나 불필요한 것을 청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늘 돌아보아야 합니다.

  

주님께 청할 때는 정당한 기도를 드려야 하고, 끊임없이 항구하게 강한 믿음을 가지고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들의 삶에서 세상의 것이 중심이 되면 모든 일이 불가능하지만, 주님의 것이 삶의 중심이 되면 모든 일이 가능하게 됩니다. 우리들의 믿음은 과연 모래 위에 성을 쌓은 모래성같은 믿음은 아닌지 묵상합시다..ß]

대전 Re. 단장

  

레지오와 성삼위

맥그리거 신부 / 강용대 역

지난 5월, 삼위일체대축일을 보내며 교본에서 의미있게 잘 기술된 제7장 레지오 단원과 성삼위를 읽고 묵상하였습니다. 많은 가톨릭 신자들은 삼위일체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려고 힘쓰거나 또는 인간적으로 이해가 가능한 범위 내에서라도 그 유사한 형상들을 찾아보는 노력을 하기 이전에 당연하게 삼위일체를 받아 들여 그를 사랑하고 그에 의한 삶을 살아가고는 합니다. 레지오의 여러 모임 중에도 우리는 수없이 성호를 긋습니다. 그리고 당연하게 하루에도 몇 번씩 성호를 그으며 강복을 빕니다. 성호를 긋는 것은 우리 믿음의 가장 중심적인 진리인 삼위일체의 신비, 그리고 하느님이 사람이 되어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이 모든 진리들을 가장 단순하게 나타내는 표징입니다. 천주 성부의 이름으로는 하느님께서 그의 아드님을 우리 가운데 보내시어 살다가 우리를 위해 돌아가시게 하신 그 깊은 사랑을 기억하게 합니다. 성자의 이름으로는 사람이 되어 오신 예수님을 통하여 하느님께서 우리 하나 하나를 무한한 열정으로 사랑하신다고 선포하셨음을 기억하게 합니다. 그리고 물론 우리를 성화시켜 구원하시는 이 모든 하느님의 사업은 성령의 힘으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하느님은 성부와 성자와 세상의 모든 피조물, 특히 우리 인간의 존재를 보살피는 성령으로 어우러진 사랑이십니다.

 
최근에 저는 여러 레지오 단원들과 함께 처음으로 루르드 성지순례를 가서 성모님께서 루르드에서 하신 행동과 말씀에 대하여 묵상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성모님은 처음 발현하시어 벨라뎃다에게 성호를 긋는 방법에 대해 가르쳐 주시고는, 그 후 나타나실 때마다 성호를 함께 그으셨습니다. 성모님의 지상에서나, 또는 지금 천상에서의 삶은 성삼위의 깊은 삶속에 묻혀 지내시며 우리에게 성모님을 닮은 삶을 살 것을 바라고 계십니다. 교본 제7장 레지오 단원과 성삼위는 루르드에서 성모님이 보내신 것과 같은 의미의 말씀을 담고 있습니다.


제7장 전체를 전부 읽어 드리고 싶지만, 시간상 교본에 있는 몽포르의 성 루드비코 마리아 성인의 말씀만 인용하겠습니다.: 󰡐성모 마리아께 대한 우리들의 신심이 얼마나 필요한가에 대해서는 성부 성자 성령께서 우리에게 몸소 주신 바를 생각해보면 잘 알 수 있다. 즉 천주 성부께서는 성모 마리아를 통해서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인류에게 보내셨고, 지금도 계속 보내고 계신다. 또한 천주 성부께서는 성모 마리아에 의해서만 당신의 자녀들을 만들어 내시며 당신의 은총을 내려 주신다. 성자께서도 성령과 온전히 일치하고 계신 성모 마리아를 통해서만 오늘날에도 매일 탄생하시고, 각 영혼들 안에서 새롭게 나타나시며, 오직 성모 마리아를 통해서만 자신의 공로와 은총을 분배하신다. 성령께서도 성모 마리아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탄생시키시며, 성모 마리아에 의해서만 신비체의 지체를 만드시고, 당신 은총의 선물을 나누어 주신다. 이와 같이 천주 성삼께서 여러 가지 길로 확실한 표본을 보여 주셨는데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성모 마리아를 무시하거나, 성모 마리아를 통하지 않고 천주 성삼께 일치하려 하거나, 성모 마리아께 자신을 봉헌하여 스스로 성모 마리아의 소유물이 되지 않고서 천주 성삼께 봉사하겠다고 하니, 우리의 눈이 어두운 탓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몽포르의 성 루도비코 마리아 : 「복되신 동정 성모님께 대한 참된 신심」 140)


최근에 에델 퀸이 직접 쓰거나 또는 그녀에 대해 쓴 글들을 다시 읽어 보았습니다. 그가 좋아하던 신약의 말씀은 요한복음의 󰡒하느님은 사랑이시다󰡓라는 구절과 바오로 서간의 󰡒우리는 그분 안에서 살고 움직이며 존재합니다󰡓라는 것입니다. 이 두 구절을 같이 합쳐서 생각해 보면, 우리는 우리의 영적인 생활 속에 멋진 토대를 마련할 수 있습니다. 에델 퀸은 󰡐우리는 하느님 안에 살며 하느님은 무한한 사랑이시다󰡑 라는 점을 묵상하기를 좋아하였습니다. 그의 기도 생활의 중심을 이루는 것은 그녀의 마음속에 살고 있는 성삼위의 신비였습니다. 그는 많은 모임과 여러 사람들과의 끊임없는 교신을 통하여 바쁜 나날을 지내면서도 그녀 안에 계신 하느님의 현존을 소중히 하는 일을 습관적으로 반복하였습니다. 묵상 노트에 그는 계속적으로 다음의 결심을 적고 있습니다. : 󰡐힘든 일 속에서나 외부활동의 의무 안에서도 영혼 안에 계신 성삼위를 공경하도록 노력하여라.󰡑 또 다음과 같은 글도 있었습니다. : 󰡐성모님과 일치하여 그분과 함께 하십시오. 오늘 하루 모든 활동 중에 우리 영혼 안에 머무르시는 그분을 사랑하시고, 또 그분이 지상에 계실 때에 하신 일들을 따라 하려고 노력하십시오.󰡑 내 생각에는 에델 퀸은 하느님께서 우리 레지오에게 평신도 사도직을 수행하는 힘을 주시고, 우리 안에 성삼위를 모시고 사는 신비를 체험하게 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보내신 선물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평신도 사도직에 봉사하기를 원한다면 하느님의 현존을 실천하여야 합니다. 이러한 실천 없이는 우리는 일상생활 안에서 피상적이고 천박해져서 단지 공허한 사도직 활동에 머무르고 말 것입니다. 더 깊은 이해를 위해 에델 퀸의 시복시성 청원자이신 안셀름 모이니한 신부님이 쓰신 「성삼위 안에서의 삶」이란 소책자를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지난 5월의 삼위일체대축일을 묵상하며, 다시 한번 성모님께 우리 안에 계신 성삼위를 향한 지극한 봉헌에 대한 선물을 우리에게 내려 주실 것을 기원합시다. 성모님과 모든 성인들의 신비와 우리 레지오 사도직을 수행하는 모든 단원들의 신비를 위하여, 그 은총을 우리에게 내려 주시도록 끊임없이 기도합시다.ß]

  

꼰칠리움 영적 지도 / 서울 Se. 국제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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