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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08 10:01

9월호 월간지 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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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날지 않는 비둘기  


김양회․요한보스코 신부



얼마 전에 지리산을 등반할 기회가 있었다.

전라남북도와 경상남도에 걸쳐있는 지리산을 오르면서

그 웅장함과 비경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전라도와 경상도가 만나는 삼도봉에서 내려다보이는 절경과

토끼봉에서 내려다보이는 절경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지리산 토끼봉은 해발 1534m의 높은 봉우리이다.

그런데 그 높은 토끼봉 바위 위를 걸어 다니는 집비둘기 한 마리.

아주 높은 산이라서 주위에 사람들이 거주하는 집이 없는데도

어디에서 날아왔는지, 그리고 어떻게 그곳까지 날아왔는지 정말 신기한 일이었다.

  

산행을 하는 사람들이 잠시 쉬어가면서 던져주는 과자나 빵 부스러기 같은

음식물을 먹고 살면서 이제 더 이상 하늘을 날지 않고

날아다닐 수도 없을 정도로 비만해져버린 집비둘기였다.

  

비둘기는 하얀 날개를 펼쳐 높은 하늘을 날아오를 때 평화스럽게 보인다.

한 쌍의 비둘기가 나란히 앉아있는 모습을 바라보면 저절로 사랑에 젖어든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평화와 사랑의 상징인 비둘기가 귀찮은 존재가 되어버렸다.

사람들은 하얀 비둘기가 깨끗하고 예쁘게 보여서 먹이를 던져주기 시작한다.

땅바닥에 던져진 먹이를 주워먹던 비둘기는 이제는 손바닥에 놓인 먹이를

향해 사람들의 어깨와 머리 위에까지 앉아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러면 그럴수록 즐거움에 빠진 사람들은 먹이를 더 많이 던져주게 되어

결국 하늘을 날아야할 생각은 잊어버리고 날개를 펼치는 것보다는

두 발로 걷는데 더 익숙해져버린 날지 않는 비둘기가 되어버린다.

  

나는 아직도 지리산 토끼봉에서 보았던 그 비둘기를 잊을 수 없다.

날개를 펴고 높은 하늘을 날면서 자유와 평화의 상징으로 보여야할 비둘기가

산을 오르는 사람들이 던져주는 먹이에 길들어져 이제는 날지도 않는 비둘기,

그 비둘기는 바로 지금 내가 살아가고 있는 모습과 같았기 때문이다.

  

먹이를 던져주기만을 기다리는 그 비둘기는

사람들에게 신세를 지는데 너무나 익숙해진 나머지

사제로서의 역할을 잊고 살아가는 바로 내 모습이었다.

그리고 하늘을 날지 않고 사람들 주위만을 맴돌면서 먹이를 주워 먹는 비둘기는

귀찮고 힘든 일은 멀리하고 편리하고 쉬운 일만 하려고 하는

바로 내 모습이었다.

  

사제는 세상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삶을 보여주어야 한다.

사제의 삶은 적어도 예수님의 모습이 비춰져야한다.

사제의 삶을 통하여 예수님이 진정 어떤 분인지,

그리고 예수님은 어떤 생각으로 사셨고, 어떤 마음을 지니셨으며

어떻게 사랑하셨는지가 보여져야한다.

  

사제는 바로 그런 예수님의 삶을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하여 부르심을 받았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예수님께서 사셨던 생활방식으로 살아야하며

그 삶은 결코 자기 자신의 안락함이나 명예를 위한 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은 사제들에게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있다.

사제들이 마치 이상적이고 완전한 삶을 살고 있는 것처럼 생각되어

남다른 관심과 동경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문제는 지나친 관심과 도움으로 말미암아 자신도 모르게

내어주는 삶에서 받는 삶으로, 봉사하는 삶에서 봉사 받는 삶으로,

보여주는 삶에서 누리는 삶으로 길들어져 마치 하늘을 날지 않는 비둘기처럼

이제 더 이상 증거의 삶을 살지 않게 되어버린다.

  

나는 아직도 지리산 토끼봉에서 보았던 집비둘기 한 마리를 잊지 않고 있다.

그 비둘기는 편리하고 안일하게만 살려고 함으로써

예수님의 삶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는 바로 지금 내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하늘을 날지 않고 사람들이 던져주는 먹이를 먹고 살아가는 애잔한 집비둘기.

그러나 지금쯤은 그곳 지리산을 떠나 높은 하늘을 마음껏 나는

자유와 평화의 상징이 되어있기를 소망해본다.ß]

  

광주 Se. 담당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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