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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어머님...

                                                                                             양태현․그레고리오 신부

  

제가 선교사(1994-2004)로 살았던 남미(南美) 에콰도르(Ecuador)는 성모님 공경이 각별한 나라입니다. 10여년 세월동안 희노애락을 함께 나누며 동고동락했던 그 땅의 가난한 이들, 오랜 세월 인고의 세월을 살아온 인디오(남미 토착 원주민)들은 그들의 모든 것을 성모님께 맡기며 그 안에서 평화로움을 간직할 줄 아는 사람들입니다.

어디를 가나 산골 오지의 길목 모퉁이에는 어김없이 성모님께 기도하는 자리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성모 어머님께서 자신들을 따뜻한 사랑으로 품어주시고 늘 지켜주신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마을마다 지역마다 성모님의 이름도 다양합니다. 마치 마을 이름이나 지역의 이름을 붙여 자신들의 어머님이 더 최고라고 뽐내는 듯합니다.

본당이나 신앙 공동체들은 해마다 성모님의 각종 축일에 맞추어 9일 기도와 성대한 기도 축제를 엽니다. 이는 그들의 삶속에서 빼놓을 수 없는 아주 중요한 신앙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축제 준비위원회가 구성되고 그들을 중심으로 일 년 내내 준비에 들어갑니다. 필요한 경비를 모으기도 하고, 9일 기도 동안 꽃가마에 태운 성모님을 어느 코스로 돌면서 행렬 기도를 할 것인지 상의합니다. 집집마다 자신들의 집 대문간에 작은 제대를 마련하고는, 예쁜 옷을 새로 해 입힌 성모상을 모시기도 합니다. 성당에서 미사를 성대하게 집전하고 나면 그날의 당번들이 꽃가마를 탄 성모님을 모시고 행렬을 시작합니다. 이럴 때면 코흘리개 아이에서부터 지팡이를 든 노인에 이르기까지 그렇게 밝은 표정일 수 없습니다.

성모신심의 절정이라 할 수 있는 묵주기도가 바쳐지고, 제각각이긴 하지만 성가도 열심히 부릅니다. 길을 밝히는 횃불이 앞장을 서고 병마개를 뚫어 만든 엉터리 탬버린을 열심히 흔들어대는 아이들, 남미 특유의 낭만을 연상케 하는 기타 부대, 찍찍거리는 메가폰을 들고 기도 선창에 바쁜 수녀님, 그 사이사이를 오가며 분위기를 맞추어 주다보면 저는 어느덧 천국에 와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질 때도 있습니다.

감수성이 강하고 감정이 풍부한 그들이기에 쉽게 눈물을 흘리기도 합니다. 자신들의 아픔을 알아주십사 하는 소원들이 가득합니다. 따뜻함을 갈망하는 목소리들입니다. 아이들이 늘 엄마를 찾듯이, 그들은 늘 성모 어머님을 찾습니다. 배도 고프고 여기 저기 아프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불안하고 늘 갈증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에콰도르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안데스 산맥을 중심으로 2,000미터에서 4,000미터 고산 지대에 사는 원주민 인디오들에게는 특별한 성모 신심이 있습니다. 비르헨 돌로로사 (Virgen Dolorosa) 고통 받는 성모님, 즉 성모 통고에 관한 신심입니다. 이들에게서는 눈물을 흘리시는 성모님, 그들의 아픔을 함께 하는 성모님께 대한 아주 실제적인 신심을 보게 됩니다. 원래 그 땅의 주인이었으면서도 500여 년 전 유럽 식민지 시대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늘 소외되고 모든 것을 빼앗겨야만 했던 민족, 그들에게는 자신들의 아픔을 함께 하는 어머님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물론 부족한 부분들도 보입니다. 성모님의 생애 안에 깊이 자리한 예수님 강생의 신비와 하느님의 사랑과 은총을 묵상하고 성숙한 신앙인으로 거듭 태어나는 노력은 아직 걸음마 수준입니다. 하지만 성모님의 인고, 겸손, 사랑과 신앙을 본받고자 하는 결심은 대단합니다. 그들은 성모 마리아, 자신들의 어머님으로부터 신앙을 배우고자 노력합니다. 수태고지(受胎告知)의 순간부터 십자가상 마지막 순간까지 예수님과 일치하셨던 성모님의 모든 덕행을 조금이라도 본받고자 애를 쓰는 것입니다. 나의 삶에 성모님의 삶과 일치하는 부분이 있는가를 서로 자랑스럽게 늘어놓기도 합니다. 마음이 선한 이들은 자신이 곧 작은 성모님이라 칭하며 우쭐거리기도 합니다.

그들은 특별히 성모님께 봉헌된 성당이나 성모님의 성지를 순례할 때에도 편안하게 움직이지 않습니다. 반드시 걸어서 순례하기를 즐겨합니다. 수일 전부터 무리를 지어 가족들과 손을 잡고 기도를 바치며, 밤낮 구분 없이 걸어서 갑니다. 개중에는 만삭이 된 여인네들도 보입니다. 젖을 물려가며 걸어가는 새내기 엄마들도 눈에 뜨입니다. 산길을 따라 그들이 이루는 횃불과 촛불 행렬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장관입니다. 저의 사목지 인근에 󰡐낀체의 성모(Virgen del Quinche)󰡑 성당이 있었는데, 그 성당 축일에 맞추어 실시되는 도보 순례는 매년 인산인해를 이룹니다. 수 킬로미터 떨어진 길목에 살았던 저는 순례객들의 고해성사를 돕기도 하고, 그 축일 미사에 함께 참여하는 것으로 동참하기도 했습니다.

때때로 그들의 모습이 정겹게 다가옵니다. 어쩌면 다시 그곳으로 달려가 그들과 얼싸안고 성모님을 찬미하고 싶은 마음이 더 강한지도 모르겠습니다. 성모님 앞에 그들은 경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딱딱한 형식은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그저 성모님을 자신들의 어머님으로 대할 뿐입니다. 그리고 어머님이 가르쳐 주는 대로 살아가려 노력합니다. 자신들의 삶속에 성모님께서 함께 한다는 것을 굳게 믿으며 살아갑니다. 바로 이러한 점들이 더할 수 없이 간직하고 싶은 성모 신심의 매력으로 다가옵니다.

우리들의 어머님, 성모님은 멀리 계시지 않습니다. 꼭 어느 어느 장소에만 계시는 것도 아닙니다. 세상의 어느 어머님이라도 누가 더 낫고 훌륭하다고 할 수 없지만, 참으로 좋고 훌륭하신 성모 어머님은 늘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자애와 겸손이 가득한 채, 오로지 아버지 하느님의 뜻에 따라 열심히 우리를 거두어 주시고 챙겨주십니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열린 마음으로 어머님의 품에 편안하게 안기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어머님은 우리를 기다리십니다. 밥상 차려 놓고 따뜻하게 먹이고자 노심초사 우리들을 부르십니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을 먼저 알고 계십니다. 늘 자애로우신 하느님의 마음을 간직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사목국장 | 마산 Re. 담당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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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나이할배 2008.04.24 11:26
    신부님! 선교사로 계시면서 좋은 경험하시고 좋은 일 많이 하셨네요 이 훈화를 읽고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고 느끼게합니다 신부님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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