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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2.10 10:06

12월 월간지 훈화(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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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과 끝
                                                                                                                이용호가브리엘 신부

우리 속담에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이 있다. 이것은 시작하기 전에 철저한 준비가 중요하고 계획 수립을 잘해야 한다는 말이다. 또 끝마무리가 중요한데, 다 된 밥에 코 빠뜨리지 마라는 마무리를 잘해야 한다는 말도 있다.
초등학교 때, 주일학교에서 성탄절에 제대를 장식할 초를 만드는 시간이 있었다. 그날도 주일학교에서 제일 말썽쟁이였던 나는 초 만들기 시간에 장난을 치다가 교리실 밖에서 손을 들고 꿇어 앉아있는 벌을 받게 되었다. 아이들은 열심히 준비해 온 초 찌꺼기를 녹여 갖가지 유리병에 넣고 있었다. 얼마 후에 겨우 벌이 해제되어 자리로 돌아왔는데, 수녀님은 제 시간에 만들지 못하면 초를 제대 위에 올려 주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으셨다. 그래서 나도 만회를 해볼 심산으로 부랴부랴 초 찌꺼기를 불에 녹여 예쁜 유리병에 넣었다. 다른 아이들을 거의 따라잡았다고 생각되자 그제야 안심이 되었다.
초가 충분히 굳어진 다음 유리병에 담겨진 초를 출품했다. 앗! 그런데 이 일을 어쩐다? 너무 서둘러 만들다가 가장 중요한 초의 심지를 넣는 일을 그만 깜박한 것이 아닌가! 그래서 급한 김에 하는 수 없이 송곳으로 초에 구멍을 뚫어 심지를 억지로 박고는 윗부분의 초를 녹여 겉으로는 심지가 잘 들어있는 것같이 그럴 듯하게 만들어 놓았다.  
성탄절 밤에 아이들이 만든 초들이 제대 위에 나란히 놓였다. 그런데 내 초는 조금 타다 말고 그만 불이 꺼지고 말았다. 심지를 처음부터 제대로 넣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성탄 미사 후에 수녀님은 나를 조용히 부르셔서 아무리 바쁘다고 해도 바늘허리에 실을 묶어서야 바느질이 되겠어? 오늘의 실패를 교훈 삼아 다음에는 꼭 잘하도록 해. 하시며 수녀님이 만든 예쁜 초를 선물로 주셨다.
이 일은 내게는 상당히 큰 충격이었다. 부모님이, 내가 만든 초는 어느 것인지 물으셨을 때 얼굴이 벌겋게 된 것은 고사하고라도 제대 위에 나란히 놓인 촛불 중에서 내 초만 불이 꺼져 있을 때, 내가 너무 까불고 준비성이 없다는 것을 얼마나 후회했는지 모른다. 지금도 한 번씩 일을 미루고 싶을 때 그 일이 생각나는 것을 보면 내가 충격을 많이 받았던 것 같다. 매사에 너무 서둘기만 해서는 안 되는 법인 걸 그때는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시작이 중요한 만큼 끝도 중요하다. 얼음이 녹는 온도가 0이며 얼음이 얼기 시작하는 온도도 0다. 영 도는 녹기도 하고 얼기도 하는 분기점 혹은 분수령이라고 할까. 예수님이 골고타에서 돌아가실 때 예수님 오른편 십자가에 달린 강도는 숨이 떨어지기 전 마지막 순간에 자신의 죄를 뉘우침으로써 천국낙원을 보장받았다. 무엇이나 건성으로 대충 때울 것이 아니라 최선을 다하고 정말 마지막까지 노력을 다한다면 참으로 좋은 결실을 맺게 된다.  
연초에 우리가 세웠던 많은 계획들이 결산을 해보면 잘 이루어졌는지를 판단할 수 있겠지만 그 결과가 잘 드러나지 않는 것도 있다. 아예 그 결과를 외적인 기준으로 판단할 수 없을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엔 그것도 드러나게 마련이다. 잠시는 그냥 지나칠 수 있어도 시간이 경과하면 그 본연의 모습이 언젠가는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임시방편으로 심지를 넣은 것이 겉으로 보기에는 그럴싸하게 보였겠지만 심지가 없는 초의 불은 얼마 지나지 않아 꺼지고 말았던 것이다. 시작도 중요하지만 마무리도 중요하다. 설사 이번에는 실패했어도 그 실패를 바탕으로 다시는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을 방도를 마련하여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실패를 솔직히 인정하고 다시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
레지오 단원 여러분에게도 올 한 해를 돌아보며 성찰하고, 새로운 해에는 더욱 활기찬 한 해가 되도록 새 출발을 함께 하자고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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