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분의 손안에서...

by 박종일 (프란치스코)posted Jan 03,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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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분의 손 안에서
                                          
가을의 끝자락은 언제 봐도 섭섭한 마음이 듭니다.
가을이 눈에 들어올 새도 없이 들녘에 남은 것이라곤 전쟁터 피난보따리와 흡사한 흰 뭔가가 나뒹구는 모습뿐,
계절이 바쁜지, 내가 계절을 잊고 사는지 둘 중에 하나는 수상합니다.
그래도 지난 가을은 운수대통, 요즘 애들 말로 대박이었습니다.
그 좋다던 단풍구경을 하게 된 것이지요. 그것도 내장산 단풍이니 정말 오랜만의 일탈(?) 이었습니다.

실타래 풀어 놓은 듯 구부구불 재를 넘어 이어지는 단풍 길은 이미 이 세상이 아닌듯했습니다.
옛 중국 동진의 시인 도연명의 귀거래사 歸去來辭가 불현듯 떠오르는 것은 또 무슨 징조였는지 모를 일입니다.
청명한 햇빛으로 투과된 나무 잎 속살이 훤히 들여다보일 때는 가슴속 깊은 곳에서 알지모를 뭉클한 설움과 함께
눈물이 울컥하고 쏟아지기도 했지요.
어쩌면 계절도 모르고 주어진 일과에 정신없이 매몰되어 살아온 나를 발견한 시간이었는지 모릅니다.

꽃이 피는지 지는지, 바람이 부는지, 정겨운 새소리가 귓등에 들리는지 마는지...
마냥 앞만 바라보며 줄달음만 치던 지난 날,
돌이켜 보면 아쉽고 억울하기 짝이 없습니다.
새해 벽두에 잠깐 스쳐간 지난해의 아쉬움입니다.

  삶의 중심에 간부라는 주어진 책임과 의무가 주님의 뜻보다 내 생각에 의미를 더 두지는 않았는지
6개월여의 임기를 남긴 지금에서야 제 오지랖이 조금씩 보입니다.
그간 간부라는 중책이 어깨를 짓누를 때 마다 부드러운 손길로 일으켜 주시고 어루만져 주신분이
생명의 주인이신 당신의 손길임을 저는 압니다.

“사람 마음속의 뜻은 깊은 물과 같지만 슬기로운 사람은 그것을 길어 올린다”.(잠언20,5) 라는 말씀처럼
생각만 하고 누리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 마음에만 두고 쌓아둘 것이 아니라
실행에 옮기는 것이 지혜로운 삶을 사는 방법이라고 알려 주십니다.

  노래하는 중간에 쉼표가 있는 것은 다음 소절을 위한 준비이듯이 우리의 일상 또한 다르지 않습니다.
건조해지기 쉬운 삶에 휴식이 없으면 감성, 사랑도 마르고, 생명도 말라버린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합니다.
그래서 윤택한 삶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것이 휴식입니다.

“시종일관”始終一貫이란 말이 있습니다.
시작과 끝이 한결같다’.라는 말인데, 바로 성모님을 두고 하신 말씀인 것 같습니다.
성모님께서는 주님 구원사업의 ‘시작과 끝’을 함께하신 유일한 분이시자 몸소 우리들에게 신앙의 모범을 보여주신
전형이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레지오가 성모님을 사령관이시자, 우리의 어머니로 모시고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영광스럽게 여겨야 합니다.
그런 의미로 저는 성령과 성모님의 사랑과 축복을 한 없이 받은 단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제가 레지오를 시작하던 첫 날은 수요일이었습니다.
전혀 준비되지 않은 새내기를 레지오에 가입시켜 주신 대부님, 당시의 동료단원들,
끝 모를 묵주기도만 하염없이 하던 시간, 지겹고 긴 한 시간여 동안의 지루함 ...  
이제는 아련한 추억으로 남지만 처음에도 그랬듯이 현재도 당시의 열정만큼은 버리지 않고 있음을 큰 축복으로 여깁니다.

  2년여 경력에 꾸리아 부단장에, 단장, 꼬미씨움, 레지아 부단장과 단장으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불러주시는 소명에만 충실하자고 했던 지난날의 일들이 제 잘난 탓인 줄로만 알지는 않았는지 부끄럽기도 합니다.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것처럼 어색했던 날들이 지금에서야 성모님의 각별한 사랑이 아니었으면
지금의 내가 있을까 의문해 봅니다.

  가끔 헛발질과 유혹도 있었지만 그래도 성모님의 군사로 불러주신 성령의 이끄심이 있었기에
대체로 시종일관 할 수 있었음에 안도합니다.
참으로 고맙고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가끔 묵상하는 히브리 속담에
“하느님께서는 부서진 것들만 사용 하신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한 알의 밀과 보리는 잘게 부서지고 깨어져야 밥이 되고 빵이 될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의 말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지혜의 한 조각이지요.
물에 녹는 소금처럼 부서지고 깨어짐은 주님의 겸손한 도구로 쓰이기 위함이지만
그렇게 살지 못한 날이 더 많았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내안에 내가 너무도 많아” 라는 노래처럼 당신의 말씀이 제 안에 자리할 수 없음을 이제야 알게 해주십니다.

  기도도 주님과 통하지 않고 막혀 있을 때는 원망과 불평, 시기와 질투가 끊이지 않지만
내 안에 내 에고ego를 내려놓을 때 다시 새로운 기쁨, 감사, 평화가 마음에 가득하고  흘러넘치기 시작합니다.
더 맑은 영혼을 소유 하기위해서라도 자주 들어내다 버리는 연습을 많이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성모님 삶의 지혜인 겸손, 순명과 동행하기를 꿈꾸어 봅니다.

  세례자 요한처럼 사랑할수록 더 낮아져야 하고, 믿음이 깊어질수록 더 비워낼 자신감이라면 아직 괜찮을 것 같습니다.
기회는 지금부터도 충분하니까요.
주어진 소명이 커지고 많아질수록 더 내려놓고 더 고개를 숙일 줄 아는 당신의 자녀로 살기를 다시 소망해 봅니다.

  지금까지도 ‘당신의 손 안에서’ 그랬던 것처럼 넘어져도 다시 일으켜 세워주시는 당신의 큰 사랑,
생명의 힘을 믿으니까요.
그것이 시종일관 始終一貫 아름다운 삶, 아름다운 마무리로 가는 길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손 안에서 나는 당신의 영원한 반려자입니다.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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